2008년 06월 28일
파리 세번째 - 다시 쓴거
참터 뉴스레터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던 관계로 예전에 썼던 세번째 글을 다시 써야 했다.
마침 데드라인이 5.31 집회 갔다오고 얼마 안되었던지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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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프랑스의 정치, 사회 상황을 언급할 때 자주 쓰는 단어가 있다. '~로 몸살', '~의 실패' 가 바로 그것이다. '연일 지속되는 시위로 파리가 몸살을 앓고 있다' 라든가, '프랑스의 교육 정책은 실패하고 있다' 라든
가. 그것이 보수언론들이 만들어내는 자신들만의 약아빠진 단어게임이다. 미국식 정치공학은 부정적 단어를 사용하면 네거티브 공세로 몰려 역공을 당하기 쉽지만, 한국에서는 좌파가 비실거리는 모습을 최대한 부정적으로 묘사해야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어떤 단어를 쓰든 간에 그 단어가 '진실'을 담고 있다면 괜찮지 않느냐? 하고 말이다.
물론 무엇이 진실인지는 사실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교육정책에 관해서는 영미쪽 보수 언론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작 실제 프랑스의 교육주체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있었던 고교생들의 교육개혁 반대 시위를 들여다보면 교원 수, 지위 등에 대해 교육주체들이 상당한 신뢰를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단편일 뿐이지만, 사르코지의 경우에도 민심이반을 겪고 있고,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프랑스에서 미국언론들이 주장하는 식의 교육철학 변경은 쉽게 일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위로 파리가 몸살을 앓는가에 대해서는 그 기자들에게 다시 따져묻고 싶다. 길 좀 막힌다고 불편을 호소하는 파리시민을 본 적이 없다. "아, 또 manifestation(시위)이네~ 구경갈까?", 또는 박수를 쳐주거나, 사진을 찍거나, 그 옆에서 시위 참여자들과 토론을 벌이거나, "오우 저 경찰들 좀 봐" 라든가. 아마도 조선일보가 인터뷰하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체류하던 시절의 파리 역시 시위, 정치적 대립 등이 표면화 되어있던 시절이었다. 사르코지 당선 전에는 드 빌팽 당시 총리의 정치 생명을 거의 끝장 내버린 CPE 사태로 전국이 들썩 거리고 있었고, 당선 후에는 이민법 문제를 비롯한 산발적인 주제들에 대해 투쟁이 계속되었다. 2007년 2008년을 거치면서 작은 정부 지향을 천명하면서 노동자들과의 힘겨루기도 계속 되고 있는 상황이다.
CPE 집회는 나도 '놀러'나가 본 집회였다. 웬갖 풍선과 깃발, 현수막, 악기 등이 총동원된 이 시위는 파리의 남쪽의 중심지역 Denfert-rochereau 광장을 가득 채웠고, 광장 근처로 많은 이들이 오가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홍보하는 유인물들을 뿌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행렬은 Nation 광장으로 행진하였고, 밤이 되면서 시위는 일부 시위대들의 반달리즘으로 경찰의 진압이 가해지게 된다. 소르본은 아예 정문쪽이 폐쇄되어버렸고, 소르본 주변 역시 ATM기기나 공중전화 부스 등의 유리는 다 깨진지 오래였다. 그 후에도 몇몇 집회를 더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느낀 것은 '재미있다' 였다.
브라스 밴드가 행진하며 웬갖 노래들을 연주해대고, 뒤에는 각종 피켓을 들고 따라가며 시민들과 함께 얘기도 나누는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던 것이다. 그 긴 행렬에도 경찰은 보호장구 하나없이 도로 교통통제만 하고 있었다. 물론 소르본 앞 시위나 밤에 시작되는 기물파손행위 등에 대해서는 진압경찰이 출동한다. 모습 상으로는 사실 한국 경찰보다 더 위협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또한 인종차별적인 폭력행위들도 보고되는 것으로 보아 이 문제는 프랑스에서 역시 심각하지만, 적어도, 비무장한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진압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는 이들의 문제해결 방식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CPE 사태 때 드 빌팽은 학생단체 수장과도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청와대로!" 를 수백번도 넘게 외치는 10만군중(파리에서는 상상 불가한 숫자)의 소리에도 꿈쩍않고 관저로 퇴근해버리는 대통령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들의 토론 문화가 매우 부러운 순간이었다.
5월 31일 토요일에는 서울에서 대규모 촛불 시위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 경찰 폭력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했다. 그 중에는 심각한 부상도 있고, 엄청난 인권유린이 가해졌다. 이렇게 분노할만한 상황에서도 한국의 시민들은 유머와 재치를 발휘한다. 경찰과 정부가 자꾸만 과거로 회귀하면서 프랑스의 1/100에 못미치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면, 시민들의 성숙함은 프랑스의 100배다. 그들의 시위에도 유머와 재치, 개인주의적인 조직력 등을 볼 수 있지만, 한국시민들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이번 시위에 참여해본 바로 느낀 것이다.
물대포를 몇번 맞고도 전혀 동요없이 "온수!" 를 외치는 사람들, 좋은 인터넷 인프라를 통해 편집된 영상이 아닌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여과없이 전달하는 사람들, 불법주차 딱지를 제작하여 전경차를 도배해버리는 시민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비폭력"을 외치며 순순히 전경차에 오르는 사람들, 인도로 밀려나 이제는 해산하지 않을까 하는 상황에서 횡단보도를 합법적으로 건너며 잠깐의 도로점령을 만끽하는 신호등 촛불시위, 확성기를 들거나 전경차위로 올라간 경찰들에게 "노래해!" "개인기!" 를 외칠 줄 아는 사람들, 실시간 소식을 접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와 흩어진 시위대들 사이를 정보로 연결해주는 사람들, 김밥과 물을 직접 공수해오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의 그 뛰어난 재치와 상상력에 정말 놀라고 또 놀란다. 뿐만 아니라 모닥불 주위를 둘러싸고 살수차로 인해 젖은 몸을 말리며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고 즐거운 토론이 이어진다. 이명박을 찍은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서로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며 싸움이 아닌 '토론'을 즐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시민들의 '눈높이'에 정부가 한참 미달이라는 점이다. 토론자세도 되어있지 않고, 그렇다고 재기발랄한 상상력도 없다. 그저 굳어버린 자신들의 머리를 보면서도 '내가 제일 잘났다' 는 오만함만 가지고 있다. 얼른 정부가 아부가 아닌 진심으로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시민들의 상상력을 좀 더 생산적인 곳에 쓰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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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6/28 03:19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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